오캄의 면도날 이야기
1. 흑돼지와 강아지
"하느님이 진짜 있는지도 모르면서 교회에 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닌가요?" - 의지.
"그 질문은 옛날 학자들이 고민하던 문제야. 그것을 보편자 논쟁이라고 하는데, 보편자라는 것은 우리가 실제로 보는 것일 수도 있고,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일 수도 있어. 보편자들이 어떠한 종류의 존재를 가지고 있는가, 그것들이 자연 안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오직 인간의 정신 속에만 존재하는가에 대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편자 논쟁이라고 한단다... 스콜라 철학자들은 존재에 대해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존경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어." - 엄마.
오캄은 영국 출신 프랑스 신학자, 수도사였다. "원칙이란 불필요하게 곱해져서는 안 된다."라는 명제로 유명하다.
한마디로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단순하게 설명한 것이 더 옳다는 뜻이다.
오캄의 면도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양 중세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중세는 보통 5세기 게르만족의 이동과 서로마제국의 멸망(476)부터 15세기 르네상스까지 1000년간을 말한다.
한편 사상적 시각에서 보면 기독교가 정신적 중심이었던 2세 말부터 15세기에 이르는 시기를 통틀어서 넓은 의미로 중세라고도 한다.
이 시기는 사실 가까운 인류역사의 반을 차지하는 긴 시간이다.
중세는 9세기를 중심으로 크게 전기와 후기로 나눌 수 있다.
중세 전기인 2~9세기는 신흥종교였던 기독교가 주로 교리를 세우며 입지를 굳혔던 기간이다.
특히 313년 공인을 받고, 395년 국교로 정해지기까지 교리확립에 크게 기여한 기독교 지도자들을 교부, 이 기간의 사상을 교부철학이라 한다.
초기 기독교 지도자들은 철학을 무시했고 계시를 통해서 하느님의 지혜를 얻게 하는 신앙만이 참된 진리에 이르는 길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로마와 타종교의 끊임없는 공격으로부터 기독교를 지키기 위해 계시를 통한 진리의 믿음 뿐 아니라, 이성에 의한 이해와 설명도 필요했다.
이후 발생한 모든 중세철학 논란은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다.
기독교 교리가 완성되는데 기여한 최고의 교부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와 같은 중세 전기 사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철학 구호를 남겼다.
"알기 위해 믿는다."
이 구호는 받아들이기에 따라 조금씩 달리 해석될 수 있는데, 본 뜻은 "믿음을 통해서 앎도 얻을 수 있다."이다.
따라서 "알기 위해서는 믿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구호는 진리에 대한 믿음에 그치지 않고 그에 대한 앎의 가능성도 강조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중세 후기는 로마제국의 국교인 기독교를 세계만민의 보편적 종교로 확대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 시기이다.
사상적으로는 이 시기를 스콜라 시대라고 하고, 이 시기의 철학이 스콜라 철학이다. 학문의 터전이 교회에서 학교로 옮겨갔다.
중세 후기의 전반기(9~13세기) 대표적 인물은 안셀무스(1033~1109)이다. 그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에서 "알기 위해 믿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신앙내용을 이성적 논리가 바탕이 되어 신의 존재증명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스콜라 철학의 선구자로 불린다.
중반기(13세기)에는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가 신앙과 이성적 지식의 대등한 완전 융합을 시도했다.
이것은 보편종교를 추구하는 스콜라 철학의 목표이기도 했다.
"믿어야 알 수 있다."면 믿지 않는 사람들, 즉 "알아야 믿는다."는 사람들까지 믿게 하는 것이 보편종교의 목표라는 것이다.
기독교가 세계 보편종교가 되기 위해서는 믿음과 무관하게 종교적 진리를 알 수 있어야 했다.
후반기(14세기 이후)에는 이성과 신앙의 일치에 대해 반대하는 주장이 점차 커졌다. 대표적 인물이 오캄(1285~1349)이다.
오캄은 신 존재 증명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즉 신은 논리적 증명의 대상이 아니고 오직 신앙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성과 신앙을 분리하는 이 논쟁은 길고도 격렬했다. 하지만 쟁점은 추상적인 보편성 자체의 논리를 따지는 문제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소위 보편논쟁은 스콜라 철학의 대표적 논쟁이 되었다.
2. 명도남 선생님과 면도날
인류의 과학사에 가장 큰 전환을 가져온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1473~1543)의 연구는 오캄의 면도날 이론을 적용한 사례이다.
천동설은 설명하기가 복잡했지만, 지동설은 너무나 간단하게 모든 우주의 운행이 명확하게 설명되었다.
종교적 이유 때문에 천동설을 주장하니까 우주의 법칙을 올바르게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지동설로의 인식의 변화를 갖도록 한 것이 오캄의 이론이었다. 간단하고 납득이 가는 설명이 참이었다.
오캄은 진리에 가깝기 위해서는 간단하고 단순한 원리여야 된다고 했다. ☞ 단순성의 원리.
"너처럼 형이하학적인 얘가 어떻게 대호처럼 형이상학적인 아이랑 친구가 되었는지 모르겠구나." - 엄마.
사물이 형체를 갖기 이전의 근원적인 모습이 형이상(metaphysical), 형체를 갖춘 것을 형이하(physical)라고 한다.
"쉽게 말해서 밥을 좋아하는 너는 형이하학적인 거고, 독서를 좋아하는 나는 형이상학적인 거라고 할 수 있지." - 대호.
형이상학은 생각이나 정신적인 것에 관한 학문을 말하고, 형이하학은 우리가 감각으로 알 수 있는 물질이나 현상적인 것에 관한 학문을 말한다.
눈,코,귀,입,피부를 통해 감각으로 알 수 있는 것들을 형이하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눈으로 보더라도 영화,책 등의 경우엔 그것을 좋아하는 이유가 감각적인 데 있는 게 아니라 정신적인 데 있다.
눈에 보이는 영상이나 글자들 자체가 좋은 게 아니라, 그것을 통해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깨닫는 메시지나 스토리가 좋기 때문이다.
또 특정한 소리,냄새,촉감,맛을 좋아할 때에도 그것과 관련된 경험 때문에 좋아하게 된 경우도 있다.
"오캄의 면도날이란 과학적으로 증명이 불가능한 대다수의 것들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며 믿음의 대상도 아니라는 거지. 그런 허구의 존재들을 자꾸 만들어 내면 혼란만 일으킬 뿐이라는 거야. 남자다움, 선함, 위대함, 이런 추상적인 말들은 순전히 이름만 있는 거야. 실재하는 것은 이러이러한 남자들, 선하다고 생각되는 행위들, 위대하다고 믿는 업적들, 그런 것 뿐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지." - 명도남.
"그런데 왜 그런 주장을 오캄이 했을까요?" - 대호.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서양 철학자들은 세상에 있는 것들의 본질이 저 하늘에 있다고 생각했단다. 이데아라고 하는 곳에 말이야. 남자다움,선함, 이런 것들의 원형은 이데아의 세계에 있고, 이 세상은 이데아의 복사본이라고 여긴 거지." - 명도남.
"그런 것이 바로 형이상학적인 생각이란다. 보여지는 형상 너머의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 것이지. 그런 생각이 고대로부터 중세까지도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했단다. 그런데 오캄은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무엇이 있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던 거지. 실제로 증명할 수 있다고 확인되는 것만이 진리라고 주장했단다. 그러면서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필요한 원리를 제안했지. 바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야." - 명도남.
1) 존재자의 수를 불필요하게 늘려서는 안 된다.
2) 불필요하게 다수를 설정해서는 안 된다.
3) 소수를 가정해 설명할 수 있는 것을 다수를 가정해 설명하는 것은 헛되다.
"어떤 이론을 설명할 때는 간결하고 단순해야 한다는 뜻으로 오캄이 말했던 건데, 후대 사람들이 면도날로 불필요한 것을 잘라내야 한다는 의미에서 오캄의 면도날 이론이라고 불렀단다." - 명도남.
처음에 기독교는 믿음을 통해 하느님의 지혜를 얻는 신앙만이 참된 진리에 이르는 길이라 여겼다. ☞ 교부철학.
하지만 기독교의 규모와 세력이 점차 커지자, 교회는 세계만민의 보편교회라고 자처하게 되었다.
중세부터 기독교의 이름이 보편이라는 어원을 담고 있는 카톨릭인 것은 이런 사정을 보여 주는 좋은 예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지혜와 참된 진리의 보편성을 주장하고, 그에 이르는 방법까지 보편성을 갖추고자 했다.
왜냐하면 보편적 진리라면 신앙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열려 있어야 하니까.
다시 말해 믿지 않고도 진리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했다.
그런 방법은 개인이 믿는 신앙과 상관없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이성과 논리를 사용해야 했다.
즉 이성과 논리를 통해서 하느님의 계시를 통한 참된 진리를 아는 것이어야 했다. ☞ 스콜라 철학.
토마스 아퀴나스를 대표로 하는 스콜라 시대의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하느님의 존재가 사실이란 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해 보기도 했다.
이처럼 보편적 존재가 진짜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실재론(realism, 實在論)이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을 낙관적으로 여기는 것을 주지주의(intellectualism, 主知主義)라고 한다. ☞ 지성 또는 이성이 의지나 감정보다도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철학상의 입장.
그러나 이런 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학자들도 있었다.
그 학자들은 보편적 존재는 사물이 존재하는 것처럼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속에만 있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남자다움이라는 보편적 존재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남자답다고 하는 행동 또는 그런 행동을 하는 구체적인 사람이 있을 뿐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보편적 존재는 실재하지 않고 이름 뿐이라는 뜻이다. 이를 일컬어 유명론(nominalism, 唯名論)이라 한다.
그런 존재는 이성적 논리에 의해서 알 수 없고, 오직 신앙의지에 달린 문제라는 뜻에서 의지주의(voluntarism,意志主義 主意主義)라고 한다. ☞ 의지가 지성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철학상의 입장.
가장 대표적인 유명론자이자 의지주의자가 오캄이다. 그는 이성과 신앙은 일치한다는 주장에 계속 반대했으며, 결국 이성과 신앙을 분리했다.
보편성의 논리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세우는 태도는 중세의 세계관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으로, 목숨을 건 용기가 필요했다.
보편논쟁은 스콜라 철학 최대의 논쟁이었다. 논쟁의 시작은 12세기의 논리학자 아벨라르가 다음과 같은 문제에 의문을 품은 것에서 시작됐다.
"보편은 실체로서 존재하는가, 아니면 사고 속에서만 존재하는가? 이를테면 구체적인 아무개가 아닌 인간이라는 보편적 존재가 실제로 있는가?"
이 물음에 보편은 실재한다는 입장이 실재론이고, 허울 뿐인 이름에 불과하다는 입장이 유명론이다.
실재론은 당시 교회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론이었지만, 오캄은 유명론을 주장한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오캄은 무엇인가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때는 경험한 사실만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편적 존재와 같이 경험을 뛰어넘은 존재들은 철저하게 제외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캄은 이성적 논리로 따질 수 없는 요소들을 앎의 논리에서 철저히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그의 태도는 사람들에게 마치 예리한 면도날로 군더더기를 도려 내는 것처럼 비쳤던 것이다.
오캄이 이런 주장을 한 의도는 신앙의 문제가 이성적 논리로써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 오캄의 면도날 용도는 논리적으로 따질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신앙의 요소를 추려 냄으로써 신앙과 지식을 분리하자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의도했던 것은 신앙을 지식의 범위에서 분리시키고, 온전히 보존하는 것이었다. ☞ 유명론의 주장과 신앙의 보존은 모순이다.
그런데 오캄이 실제로 이룬 예기치 못한 성과는 따로 있었다.
지식과 신앙이 분리되었다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 신앙으로부터 훨씬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식은 더욱 활발해지고 경험적 사실과 실험을 중요시 했다.
즉 오캄의 유명론은 사실과 실험을 토대로 하는 근대과학이 시작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던 것이다.
3. 흑돼지의 인생 대혁명
추상적이고 모호한 것들은 모두 버리라는 오캄의 주장은 중세의 서구에서는 거의 혁명적이었다.
"오캄의 면도날 이론대로라면 지식도 불필요한 것을 골라내야 되는 거 아냐? 지식이라고 다 같은 지식은 아니니까 말이야." - 아라.
"그래, 꼭 필요한 것들만 남겨야지. 중세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불필요한 일들이 많아. 인터넷만 해도 그래. 조금만 해야지 하면서도 몇 시간이 금새 지나가 버리잖아. 별로 얻는 것도 없이 말이야. 정보간섭에 끊임없이 노출되기 때문이래. 이런 것도 오캄의 면도날로 잘라야 한다니까. 우리가 도구의 노예가 되지 않고 도구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정보를 완전하게 통제할 수 있어야 해. 그러니까 나에게 중요한 것인가, 급한 것인가, 내가 해야 하는가의 순서대로 정보를 판단해야 해. 그 과정에서 필요없는 것은 오캄의 면도날로 잘라 버려야 해." - 대호.
다이어트 100일 대작전! 내 몸에 필요한 것만 남기고 불필요한 것들을 다 없애는 거야.
1) 먹을 것의 수를 불필요하게 늘려서는 안 된다.
2) 불필요하게 다섯 끼를 먹어서는 안 된다.
3) 한 그릇으로 배부를 수 있는 것을, 몇 그릇씩이나 더 먹는 것은 헛되다.
필요없는 것들을 줄이라는 건 과학적 검증원리나 살 빼기나 똑같은 이치인가보다.
"오캄은 추상적인 모든 것을 면도날로 잘라 버리라고 했잖아요. 검증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라고요. 그럼 신은 있다고 증명할 수 없으니까 없는 게 아닌가요?" - 대호.
"어떤 이론과 원리가 먼저 있었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을 실재론자라고 하지. 반면 보편자가 실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단지 이름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유명론자라고 하는데, 오캄이 바로 유명론자란다." - 명도남.
"그렇다면 신도 그냥 이름 뿐이라고 주장하는 게 되잖아요. 결국 신이 없는 거고요. 신학자가 신을 부정하다니 이해가 안 돼요." - 아라.
"오캄의 말은 그런 게 아니었단다. 오캄은 인간이 이성을 이용하여 신이 실재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증명할 수 없다고 했던 거지. 그는 신앙과 이성을 분리시켰단다." - 명도남.
"하느님은 전능하시고, 우리의 상식을 초월하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거야. 오캄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기존의 신학자들을 비판했단다. 신은 사람들이 증명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존재하기 때문에 보여지지 않는다고 해서 신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게 오캄의 주장이란다." - 명도남. ☞ 유명론과는 양립할 수 없는 이율배반족인 주장이다. 그 시대 지식인의 한계였다.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만약에 신이 있다면 그걸 사람의 생각으로 알 수는 없을 것 같긴 해요. 그런데 그렇게 위대한 능력이 있으면 우리한테 한 번 나타나 주시지 왜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요? 보이기만 하면 안 믿을 사람이 없을 텐데... 사실이잖아요. 하느님이 짠~ 하고 보여 주면 사람들이 왜 이렇게 복잡한 토론을 하고 다른 주장을 하겠어요?" - 의지.
"그것 또한 신의 뜻이니 우리가 알 수 없겠지. 우리가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것은 신앙 문제겠지."- 명도남. ☞ 섭리는 매우 효율적인 회피수단이다.
"저는 남보다 많이 가지고 싶고, 많이 알고 싶고... 그랬거든요. 그런 거에 욕심이 많아서 닥치는 대로 책을 보고, 물건도 사서 모으고 그랬어요. 그런데 오캄의 얘기를 듣다 보니까 그 면도날이라는 것이 절약하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생각돼요." - 아라.
"그래, 오캄의 면도날이 우리에게 지금 주는 의미는 그런 것일 거야. 너무 풍족하고 낭비하는 요즘, 꼭 필요한 것만 남기라는 뜻 말이야... 인터넷 정보가 넘치지만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얼마 되지 않거든."- 명도남.
"그래서 오캄이 청빈과 무소유의 삶을 살았던 거군요. 그것 때문에 교단의 미움도 받고 이단으로 몰리기도 했다던데." - 대호.
이 계절이 지나면 나이만 먹는 게 아니라, 우리의 생각의 깊이도 쑥 자랐으면 좋겠다.
의지주의자인 오캄은 신학자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아울러 오캄은 근대 경험과학의 진정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그가 철저한 유명론자였기 때문이다.
중세에 천사와 같은 존재는 우리 마음속에나 있는 이름 뿐이라는 것이라는 유명론적 주장은 목숨을 내건 일이었다.
이런 주장은 신앙을 왜곡시키지 않기 위한 오캄의 과감한 주장이었다.
그는 앎과 믿음의 문제를 분리시켰으며, 그 영향은 뜻밖에도 원래 의도보다는 더욱 큰 성과를 불러일으켰다.
오늘날가지 오캄의 철학은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1) 이름 뿐인 것을 실재하는 존재로 여기지 말라.
전생,환생,윤회,텔레파시 등의 개념을 심령과학이라고 한다. 일반적인 과학과는 다른 개념이다.
과학의 대상으로 볼 게 아니라 신앙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유사과학의 혼란스런 문제들을 제거해내기 위해서는 오캄의 면도날이 여전히 유효하다.
2) 불필요한 가설을 내세우지 말라.
혈액은 심장에서 끊임없이 생성되어 혈관을 통해 흐른다는 가설이 고대부터 있었다.
하지만 16세기 윌리엄 하비(1578~1657)는 실험관찰을 통해 혈액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물질임을 밝히고 잘못된 가설을 바로 잡았다.
혈액 생성설은 당시에는 권위 있는 학설이었기 때문에 바로잡기 위해서는 오캄의 논리철학적 면도날을 사용하는 지적 용기가 필요했다.
3)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을 복잡하게 만들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