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과 언어철학
1. 말과 언어는 힘이며 권력이다.
"언어는 미로이다. 당신은 어떤 한쪽으로부터 오면 그 길을 잘 안다. 당신이 다른 쪽으로부터 동일한 장소로 다시 오면 당신은 그 길을 더 이상 알지 못한다."
말과 언어는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말과 언어는 단순히 필요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무기와 같은 성질을 가진다.
우리는 말과 언어를 통해서 명령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뜻을 실현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말과 언어를 힘이나 권력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성장하면서 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다가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언어의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비트겐슈타인은 세상을 알려면 먼저 언어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했다. 세상이 어떤 것인지 언어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어는 복잡하다. 세상에는 다양한 언어가 있다. 셀 수 없는 단어들이 있고, 그 단어들마다 쓰임새가 다르다.
그래서 비트겐슈타인은 그 언어를 이루는 기본은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철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언어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언어에 대한 연구에 집중했다.
그는 언어를 알기 위해서는 언어를 이루는 기장 기본적인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서부터 시작했다.
당시 사람들은, 언어의 기본은 생각이나 사실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간단한 생각을 표현하는 문장을 명제라 했다.
어떤 것을 주장하는 내용이 담긴 문장이 명제다. 언어의 기본은 생각이나 사실을 표현하는 것이다. 거기에서 단순명제가 만들어진다.
"비가 온다."와 같이 그 사실을 설명하는 가장 단순한 명제를, 가장 간단한 생각을 표현하기 때문에 단순명제라 한 것이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비트겐슈타인은 세계는 가장 단순한 명제들로 설명될 수 있다고 보았다.
2. 세상과 사물과 그 모든 것들의 이름
"사고는 일종의 언어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세상은 사실들로 이루어져 있고, 언어는 그 사실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이란 사물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세상은 이러한 사실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러한 사실들을 언어로 표현하면 그것이 바로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언어 세계를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정확히 사용하면 그에 해당하는 세계를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언어를 통해서 세계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아는 언어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세계를 보여 주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언어를 통해서 알 수 없는 세계는 보여 줄 수 없는 세계가 되는 것이다.
언어가 가지는 한계는 곧 세계가 갖는 한계가 되기도 한다.
언어의 기능은 보여 줄 수 있는 세계를 정확히 보여 주는 것이다. 이것을 언어의 그림이론이라 한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언어로 세계를 그리는 셈이다.
우리는 '비가 온다.'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 말을 통해서 '비가 오는 세계'를 그리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물들이 특정 관계를 맺고 있는 세계를 이루고 있는 사실들은 명제와 기호들에 의해서 그려지게 된다.
따라서 명제는 사실들에 대한 그림인 셈이다.
하나의 사실이 있고 그 사실을 언어로 그린다면 언어와 사실들이 서로 일대일로 만나게 되고, 그래서 서로 대응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실의 세계에 맞는 언어의 세계가 생기고, 이때 생기는 언어의 세계가 사실들의 세계를 정확히 그릴 수 있다면, 언어의 세계와 사실의 세계가 서로 정확히 들어맞는다면, 그게 바로 진리가 되는 것이다.
세계의 사실들을 모두 언어로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한 비트겐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언어로 그릴 수 있는 세계에 대해서는 정확히 그리고, 그릴 수 없는 사실의 세계에 대해서는 침묵하라."
즉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정확히 말하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뜻이다.
말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말하려고 할 때 사람들은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게 되고 혼란과 거짓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3. 언어의 생명은 그 쓰임이다.
"철학은 문장들 안에 있지 않고 언어에 노정되어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로 세계를 정확하게 그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만으로는 약간 부족하다면서 고민하게 된다.
우리는 언어를 생활 속에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언어의 뜻은 우리가 사는 생활방식과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관계들은 불분명해서 심지어는 혼란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세계를 설명하는 언어를 분명히 알기 위해서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생활습관과 행동을 함께 연구해야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은 불분명하게 생각되었던 옛 생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게 된다.
이에 대해서 그는 언어라는 안개 속에 갇혀 있었다고 말한다. 이 언어의 안개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언어의 수수께끼를 풀려고 했다.
비트겐슈타인은 세계의 구조와 언어의 구조가 서로 일치한다는 처음의 생각을 버리게 된다.
여기서 그는 언어가 한 가지 뜻만 갖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을 밝히고(의미의 다양성), 세계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그 언어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하게 된다.
언어는 안개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그 안개를 벗기는 것이 바로 철학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언어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를 연구해야 한다는 이론을 말하게 된다. 이것을 언어의 사용이론이라고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안에서 언어가 잘못 사용됨으로써 많은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서로 옳다고 다투는 경우를 보면 언어를 서로 잘못 사용하고 이해한 데서 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철학의 수수께끼도 문법을 잘못 사용하거나 사용하는 언어를 잘못 이해한 결과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이제 철학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새로운 어떤 사실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잘못 사용된 언어를 바르게 사용하도록 하는 사소한 일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사람들의 생각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하는 방법을 찾는 일이 되었다.
그에 의해서 철학은 사람들의 생각을 분명하게 하는 활동으로 이해된 것이다.
생각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비트겐슈타인은 언어 게임이라는 기술을 발명하게 된다.
4. 언어 게임 - 언어 사용은 규칙에 따른 게임이다.
"말 뒤에 있는 의미는 보통 언어소통에서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말은 스스로 흘러가고 말로부터 행위로, 행위로부터 말로의 전이과정들이 만들어진다. 우리가 계산할 때 충분히 생각하고 계산하는지 앵무새처럼 계산하는지에 대해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표현하는 것과 보이는 것이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비트겐슈타인도 나중에야 그걸 알았다.
처음엔 사실과 언어가 일치해서 언어를 통해서 모든 것을 드러낼 수 있다고 믿었지만, 점점 그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간은 다양한 현실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언어를 쓰는데, 상황에 따라 그 뜻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말을 정확히 듣기 위해선 말하는 사람의 미묘한 눈짓, 몸짓, 그리고 억양까지 느껴야 하는 것이다.
한 사람 속에 다양한 모습이 들어 있듯 말도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언어 게임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가 예로 든 것은 목수와 조수가 일하는 광경이다.
조수가 매우 숙련된 사람이라면 목수의 손짓이나 표정을 보고도 무슨 도구를 필요로 하는지 알기에 일하는 데 불편함 없이 도구를 건넬 수 있다.
그러나 조수가 신입이라면 아마 많이 헤맬 것이다. 어쩌면 일하는 목수를 방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익숙한 조수와 함께라면 단어 하나만 말해도 곧장 원하는 물건을 건네 받을 수 있는데, 신참 조수라면 설명을 많이 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언어를 사용하는 것도 서로 상황에 맞게 말을 주고받는 것이기 때문에 규칙에 따르는 언어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게임은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게임이든 반드시 규칙이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게임은 이 규칙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그 규칙이 곧 게임은 아니다.
축구 경기는 규칙에 따라서 하지만, 그 경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재미있는 게임이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똑같은 규칙을 가지고 얼마나 많은 다양한 게임들이 전개될 수 있는지 모른다.
언어 게임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각 언어들이 가지는 규칙에 따라서 언어를 사용하지만, 아주 간단한 의사표현부터, 감정표현, 지적표현, 사상표현에 이르기까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는 언어 게임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복잡한 바둑 게임이라 해도 그 게임을 구성하는 기본은 아주 간단한 규칙들에서 시작한다.
이렇게 보면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언어 게임도 아주 간단한 기호들을 사용함으로써 시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는 수많은 언어 게임들은 서로 공통성을 갖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것을 언어들이 가족 구성원에서 보여지는 유사성을 갖고 있다고 했다.
한 가족은 비슷한 점이 많이 있다. 그것처럼 각 언어들도 서로 유사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언어의 가족 유사성이다.
그런데 가족들이 유사성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서로 구별되는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언어 게임도 서로의 차이에 의해서 구별되는 것이다.
그래서 비트겐슈타인은 언어 게임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서로 잘 구별해서 명확한 언어 게임을 하자고 주장했다. 이것을 언어 분석이라고 한다.
결국 언어를 옳게 사용하고 있는가 하는 언어 사용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철학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이다.
5. 언어 분석은 언어 게임을 요리하는 또 하나의 언어 게임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말을 잘하려고 하지 말고, 생각하는 것을 정확히 표현하는 것부터 해 보라.
중요한 건 멋지게 말하려고 꾸미지 말고, 있는 그대로 진심을 전달하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이해하는 것은 언어의 사용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언어는 삶의 흐름 속에서만 뜻을 갖기 때문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언어를 쓰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언어는 다양할 뿐만 아니라 사용되는 상황에 따라 뜻도 달라진다.
한 사람 안에 여러 모습이 있듯이, 한마디 말에 얼마나 많은 뜻이 있는지 놀랄 정도다.
그래서 비트겐슈타인도 철학은 언어가 어떻게 사용되는가를 있는 그대로 밝히고 언어는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연구되어야 한다고 했다.
결국 말을 이해한다는 것은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말을 이해하면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사람들은 과학의 방법을 최고로 생각해 철학적 문제도 과학적 방식으로 묻고 답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방법은 다양한 언어 게임을 한 가지 방식으로만 설명하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을 선입견에 빠지게 한다고 봤다.
그래서 이러한 생각의 선입견으로부터 벗어나자고 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를 분석해야 한다고 했다.
즉 철학은 언어 게임을 요리하는 또 하나의 언어 게임인 셈이다.
우리는 지금이라는 말을 어느 시점을 가리킨다고 생각하면서 흔히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지금이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그것은 시간의 한 순간을 가리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떤 뚜렷한 순간, 예컨대 지금 '내가 글을 쓰는 순간'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 없다.
다만 '지금'이라는 언어를 사용할 때 실제로 이 언어가 그 언어 게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를 봐야 지금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우리가 '지금'이라는 말을 따로 떼어 내서 설명하라고 하면 잘 알 수 없는 말들을 하게 되는 혼란 속에 빠지게 된다.
토끼와 비슷한 개 그림 또는 개와 비슷한 토끼 그림을 볼 때, 사람들은 서로 다른 말을 하게 된다.
토끼를 알지 못하고 오리만 보고 자란 사람은 오리라고 할 것이고, 그에게는 전혀 애매한 그림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오리를 전혀 보지 않고 토끼만 경험한 사람은 토끼라고 할 것이다.
사람이 아는 것 혹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그전에 무엇을 경험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사람들은 무엇을 보거나 생각할 때 자신들이 이미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한 어떤 성향에 따라서 생각하게 된다.
어떤 대상에 대해서 우리가 보고 싶은 대로 보려는 유혹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이 아는 언어만을 계속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사람들이 언어를 사용할 때,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자신이 생각하고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서만 언어 게임을 하려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이것은 사물이나 생각을 자신의 특정한 모습으로만 보려는 한정되고 닫힌 언어 게임인 셈이다.
이렇게 닫힌 태도로 언어 게임을 하게 되면 언어가 가진 무수히 많은 면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혼란 속으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언어 게임에서는 모든 언어들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이해해서 참된 언어 이해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즉 참된 언어 게임은 어느 특정한 것들이 일방적으로 보여지는 모습을 바꾸어 보도록 하는 것이다. 관점의 변화다.
비트겐슈타인은 사물이나 언어를 보는 사람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보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잘 연주된 음악이나 잘 부르는 휘파람 소리를 들으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감명받을 수 있다.
그리고 똑같은 시 내용도 낭송하는 사람의 능력과 듣는 사람의 기호에 따라서 반응이 다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음악이나 소리만으로 감상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 주위의 분위기나 듣는 사람의 감정 등이 크게 작용할 것이다.
그러므로 특정하게 보게 하는 어떤 방식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해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무엇을 보려고 할 때 거기에 무엇이 관련되어 있는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언어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로 요구되는 사항이다.
똑같은 음악도 이해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이 다르게 듣는 것처럼, 똑같은 말도 그 말을 이해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에 따라 차이가 난다.
그래서 언어 게임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언어를 보아야 한다.
똑같은 그림이 어떤 때는 오리로 어떤 때는 토끼로 보이거나, 똑같은 그림이나 시, 음악, 언어가 지금은 이상하고 낯설며 소음처럼 느껴지더라도 만약 그들이 이해한다면 감동적이고 멋있게 보여질 것이다.
이를 위해서 철학은 언어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고 해야 한다. ☞ 있는 그대로를 이해하려면 다양한 학습과 경험을 통한 입체적 시각이 필요하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참된 이해는 그것을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가능하다고 한다.
언어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표현되기 때문에,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삶의 흐름 속에서만 언어는 있는 그대로 이해될 수 있다.
에필로그
비트겐슈타인은 세상은 사실들로 이루어져 있고, 언어는 그 사실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이란 사물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세상은 이러한 사실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러한 사실들을 언어로 표현하면 그것이 바로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통해서 세계를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결국 우리가 아는 언어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세계를 보여 주는 것이 된다.
따라서 우리가 언어를 통해서 알 수 없는 세계는 보여 줄 수 없는 세계가 되는 것이다.
언어가 가지는 한계는 곧 세계가 갖는 한계가 되기도 한다.
언어의 기능은 보여 줄 수 있는 세계를 정확히 보여 주는 것이며 비트겐슈타인은 이것은 언어의 그림이론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언어로 세상의 사물들을 그리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이루는 기본을 단순명제라고 했다.
언어는 사람의 생각이나 사실을 표현하는 것이므로 가장 간단한 생각을 표현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명제란 어떤 것을 주장하는 내용이 담긴 문장이며, '날씨가 맑다.'라는 문장은 사실을 설명하는 단순한 명제이므로 단순명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비트겐슈타인은 세상은 가장 단순한 명제들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