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영역을 거부하는 근대 사회에 접어들면서 자연과학을 중시하는 계몽주의가 대두되었다. 콩트는 다른 계몽주의자와는 차별화된 사랑과 가족을 중시한 사회학을 주창했다. 사회를 구성하는 가족, 그 가족간의 사랑과 그 안에 실증주의 사회학을 설명한다.
윤민재. 서울대 사회학 석사/박사 학위.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객원 연구위원. 저서《중도파의 민족주의 운동과 분단국가》《세계화시대 남북한통합의 방향과 과제》등. 역서《그람시와 민족국가》《근대성 탈근대성 그리고 세계화》등.
오귀스트 콩트(1798~1857).
프랑스의 철학자, 실증주의의 창시자. 사회학이라는 용어는 그가 제창했다. 청년시절 생시몽의 비서였다.
그의 실증주의 철학은 자연과학이 축적한 대량의 데이터를 종합하는 데 노력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입장은 결국, 주관적 관념론과 불가지론이 결합한 것으로, 그 종합도 정당한 것이라 할 수 없었다.
콩트의 평생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당시의 프랑스, 나아가서 유럽 전체에 퍼져 있었던 무정부상태에 종지부를 찍고, 통일을 재건하는 것이었다.
당시 무정부상태가 지적,정신적인 무정부상태에서 유래한다고 보고, 지적,정신적인 통일을 수립하는 것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는 인류의 정신적 발전에 관한 3단계의 법칙에 의거해서 인류정신의 개혁을 주장하였다.
1) 신학적 단계 - 초자연력, 결국 신에게 모든 현상의 기원을 귀착시키는 단계.
2) 형이상학적 단계 - 신학적인 것의 변용인 추상적인 형이상학적 본질에 모든 현상의 기초를 구하는 단계.
3) 실증적 단계 - 실증적 방법에 의한 단계.
신학적 정신에 의한 통일의 재건은 불가능하며, 형이상학적 정신을 거쳐서 궁극적으로는 실증적 정신에 의거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이 구분은 현실의 발전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그의 사회학에서는 사회의 설명에 생물학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말년에 단순한 지적통일만으로는 결정적으로 불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은 콩트는 그것을 포함하면서도, 실증종교, 인간이라는 위대한 존재를 예배하는 <인류교>를 창시하고, 이를 보급시킴으로써 무정부상태의 위기에서 탈출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콩트의 사후, <인류교>는 세력을 잃었지만, 그의 실증주의는 철학만이 아니라 역사나 문예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사회학은 바다를 건너서 J.S.밀이나 스펜서에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대륙에서도 뒤르켐학파의 사회학 등을 낳는 원동력이 되었다.
책 머리에
모든 것은 주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던 시대가 있었다. 굶어 죽어가는 것마저 주의 뜻으로 여기던 시대였다.
이렇게 비합리적인 카톨릭에 반기를 들고 나타난 사상이 계몽주의다. 데카르트, 베이컨, 뉴턴, 흄, 콩트...
계몽주의의 특징은 과학과 이성의 만남으로, 합리성과 논리성을 중요시했다.
프랑스의 철학자 콩트는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아 실증주의 사회학을 탄생시켰다.
그는 사랑과 家族愛를 중시했으며, 인간활동을 조정하는 도덕적인 존재로 가족과 여성을 꼽았다.
1. 오귀스트 콩트
"사랑의 본질은 개인을 보편화하는 데 있다."
콩트 철학의 중요한 개념은 과학정신인 이성이다. 이성은 사람들이 미신이나 비합리적인 생각에 빠지는 것을 막아 준다.
이성의 힘을 깨닫지 못하면, 마치 中世人들처럼 눈을 뜨고 있어도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판단하지 못하며,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제대로 보고 판단하고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이성이므로 사회에 해를 끼치는 것들에 대항해 싸울 수 있는 힘을 준다.
이것이 바로 콩트의 사회학이 기초로 하고 있는 실증주의 정신이다. 그는 실증주의가 인간사회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2. 실증주의
계몽주의 시대의 핵심은 과학이었다. 과학은 일반적으로 객관적이며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논리적이라고 한다.
계몽주의는 인간중심주의, 이성중심주의, 과학실증주의로 정리할 수 있다.
당시 학자들은 사회의 외형적인 구조변화가 자본주의,산업주의 사회를 출현시켰다고 생각해서 경제적 분석, 물질적 분석을 중시했다.
반면 콩트는 정신적, 도덕적인 영향력을 강조했다.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단위를 콩트는 가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정에서의 화목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실증주의는 관찰,실험 등을 통해 사실을 밝히고 이론을 세워서, 진리를 입증할 수 있다는 철학이다.
계몽주의는 실증주의를 통해 더욱 발전할 수 있었다.
계몽주의는 인간의 지혜,논리,철학에 의해 더 나은 사회, 바람직하고 유익한 사회로 변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계몽주의 철학자로서 콩트의 철학과 사회학에는 자연과학적 성격이 많이 남아 있다.
콩트가 사회를 분석할 때도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유이다.
콩트는 인류의 발전과정을 설명하고 앞으로 진행될 과정을 예견할 수 있는 과학을 만들고자 했다.
즉 사회에 관한 과학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콩트는 이 학문을 사회물리학이라고 불렀다. 훗날 사회학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게 된다.
그는 자연과학이 인간을 위해 많은 것들을 가져다 준 것처럼, 사회학도 인간에게 유익함을 가져다 주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사회학도 과학이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래서 콩트의 사회학은 실증주의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회학은 계몽주의 전통이 없었다면, 혹은 실증주의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출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콩트는 사회학이라는 학문을 자연법칙에 종속된 하나의 과학으로 정립시키려 했다.
그는 관찰에 기초하여 사회를 연구하고, 사회를 지배하는 근본적이고 기초적인 법칙들을 발견하는 것을 사회학적 이론의 전개라고 생각했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현대의 사회학 방법론과는 동 떨어진 것이다.
단순히 사회학적 사실들에 대한 인과적인 연구가 아니라, 인과관계들을 통해 사회의 궁극적 속성을 이해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콩트는 관찰에 기초하여 사회학적인 원리와 법칙을 발견하려 하였고 이것을 실증주의라고 불렀다.
실증주의라는 단어는 현대에 와서 경험주의로 오해되는 경우가 많은데 콩트의 실증주의는 이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는 단순히 현상을 관찰하는 데 그치는 조야한 경험주의를 비판하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모든 이론이 관찰된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면, 모든 현상도 이론에 기초해야 한다."
그는 실증주의가 단순히 경험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론과 법칙의 발견이라는 목적을 염두에 두고 현실을 관찰하는 방법론임을 주장했다.
그에게 관찰이란 현실의 사실들 사이에 존재하는 경험적인 법칙관계를 밝혀 내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험이라는 인위적인 방법은 윤리적, 도덕적인 문제로 인해 사회를 대상으로 하기에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콩트 역시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였으나, 그는 인위적 실험 대신 자연적 실험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자연적 실험의 대표적인 예는 생리학의 병리적 현상 관찰처럼 사회적 병리현상의 관찰, 즉 사회적 일탈현상의 관찰을 들 수 있다.
"여성은 모든 인간활동을 조절하는 도덕적인 힘을 제공한다. 여성은 사랑할 줄 알고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줄 아는 존재이다."
콩트는 사람은 스스로 혼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남녀가 만나 사랑해서 아이들이 생기는 과정을 거치므로 사회의 구성단위는 가족이라고 했다.
콩트는 사회의 완성에 여성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여성이 모든 인간활동을 조절하는 도덕적 힘을 제공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성은 사랑할 줄 알고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의 진정한 행복은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의 감정을 부추기는 자연스러운 임무에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