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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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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맨21 2020. 4. 4.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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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論語> 여행을 위한 준비
 고전이 진정한 고전인 까닭은 시대마다 합당한 해석들이 용인되고 소통되는 측면을 가진 데 있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전되었기 때문에, 전통사회에서의 論語 해석은 진부할 수 밖에 없다.
 오늘날은 다양한 가치가 용인되는 시대이다. 따라서 論語는 유일한 삶의 나침반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사상 가운데 상대적인 가치를 차지한다.
 동양 고전들은 주로 그 주인공을 제목으로 삼는다. <맹자> <장자> <순자> <한비자> 등이 그렇다.
 그런데 <論語>만큼은 <공자>가 아니다.그 속에 제자들의 일화가 섞여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論語>는 스무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篇名은 그 편의 머리글자를 따서 그냥 제목으로 삼은 것이다.
 <논어>가 지금과 같이 스무 편으로 이뤄진 표준형으로 고정된 것은 공자(BC.551~479) 사후 한참 뒤였다.
 주희에 따르면 공자 사후 스승의 말씀 조각들을 모아서 초창기 형태의 <논어>를 만든 사람은 유약과 증삼이라는 제자와 그들의 제자들이다.
 論語에서 초창기 제자들은 그냥 이름으로 불리는 데 반해, 후기 제자에 속하는 유약과 증삼은 유자와 증자로 불리기 때문이다.
 최초의 論語 판본은 공자의 고향인 魯나라에서 결집되었겠지만, 머잖아 이웃 齊나라에서도 유사한 論語가 생겨났다.
 魯나라에서 결집된 것을 魯論이라고 하고, 齊나라에서 통용된 것을 齊論이라고 한다.
 그런데 진시황의 분서갱유 사건이 일어나자 論語는 급급하게 감추어야 할 금서의 처지가 되고 만다.
 이때 공자의 후손들은 공자의 고택 담벼락에다 論語를 숨겨 두게 된다.
 秦나라가 망하고 漢나라가 수립된 뒤, 공자의 고택을 수리하는 와중에 담벼락 속에서 옛 論語가 쏟아져 나온다. 이것을 古論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초창기 論語 판본은 魯論, 齊論, 古論이 있다. 그중 古論은 옛날 글로 쓰여졌을 뿐만 아니라 내용이 들쭉날쭉 한결같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표준화의 요구가 생겨났는데, 특히 漢나라가 유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그 필요성은 더욱 강해졌다.
 이때 魯論을 중심으로 古論과 齊論을 감안하여 새롭게 편찬한 사람이 정현(127~200)이다.
 이를 계승하고 가다듬어 정본으로 만든 사람이 魏나라의 하안(193~249)인데, 그가 편찬한 <논어집해>는 주석들을 총괄해 표준형으로 만든 것이다.
 여기에서도 魯論이 중심이 되어 거기에 齊論의 부분들(16편 계씨)이 보완되어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형성되었다.
 그러나 論語에 대한 주석이라면 12세기에 고금의 주석들을 정리해 성리학적 관점에서 해설한 주희의 <논어집주>가 대표적이다.
 조선 주자학의 핵심 텍스트가 바로 <논어집주>다. 말하자면 조선 500년은 <논어집주>라는 레일 위를 달려간 기차라고 비유해도 과언이 아니다.
 텍스트를 분석하면, 論語의 전반부 열 편이 후반부 열 편보다 공자의 진면목에 가깝다는 것이 통설이다.
 특히 20편 堯曰 편 같은 것은 공자의 사후 유교 교단의 정통성을 부각할 필요에 따라 편집된 의도가 물씬 느껴진다.
 19장 子張 편도 공자 사후 제자들 간에 법통을 둘러싼 다툼이 보이고, 공자의 말이 기재되지 않아, 공자와 직접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論語의 스무 편은 대부분 주제의식 없이 공자의 말과 일화, 제자들과의 대화와 시대비평 등을 수록한 것이다.
 공자의 아버지는 읍장 정도를 지낸 나이 많은 숙량홀이고, 어머니는 顔씨로만 알려져 있다.
 '야합하여 낳았다... 성장하도록 어머니는 아버지의 묘를 알려 주지 않았다'는 <공자세가>의 기사로 보아 출생과정에 미심쩍은 점이 없지 않다.
 적어도 정상적인 가정에서 유복하게 자란 사람이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공자는 마차몰이, 공장기술자, 목장관리인 등 여러 분야의 일을 경험했다.
 또한 공자는 재정담당관, 司空(건설부장관), 행정관리, 의전관(외교관) 등의 실무경험을 갖추었다.
 급기야 법무부장관 직책을 수행하면서 재상 직무대리를 겸임했는데, 이때가 가장 화려하고 활동적인 시기였다.
 이때 그가 행한 특기할 만한 일은 大夫로서 정치를 어지럽히던 소정묘를 잡아 죽였던 일이다.
 공자의 다양한 경력을 보면, 論語 속에 개진된 그의 언어들은 결코 책상머리에서 고전을 보고 익힌 形而上論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공자는 동양 최초의 교사였다.
 
 1. 배워야 사람이다. - 學而.
 학이 편은 論語의 첫 편으로 道에 들어가는 문이요, 덕을 쌓는 근본이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공자가 말하길,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나지 않는다면 군자가 아닌가."
 짐승은 배움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 오로지 배워서 기쁨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이것이 인간이다.
 배우고 익히고 기뻐하는 삶은 죽는 날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공자에게 삶은 기쁨으로 점철되는 삶이다.
 뻐긴 적이 없는 공자였지만, 好學만큼은 남에게 양보하지 않으려 했다.
 "子曰, "열 가구의 작은 마을에도 나보다 충성스럽고 믿음직한 사람이야 있을 테지만, 나만큼 배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이는 자기과시가 아니라, 즐겁고 재미있는 일은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는 욕심꾸러기가 자신이라는 겸손한 자기고백이다.
 공자에게 배움과 익힘의 대상은 무엇이었을까?
 보통 六藝를 든다. 과목 중심으로는 예절, 노래/춤, 활쏘기, 마차몰기, 글쓰기, 셈하기 등이 그것이다.
 모두 고대에 지식인이자 무예를 겸비한 선비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 技藝들이다.
 한편 六藝는 텍스트(책) 중심으로 詩經, 書經, 禮記, 樂記, 易經, 春秋를 드는 경우도 있다.
 공자는 책을 몹시 소중하게 생각했다.
 자로가 書經을 읽지 않은 자고를 費 땅 책임자로 추천하여 임명하도록 했다.
 子曰, "저 놈, 또 남의 자식 하나 잡겠구나!"
 자로曰 "백성들 있겠다, 사직이 있어 귀신들이 보호하시겠다, 그러면 되는 것이지 꼭 書經을 읽은 다음에야 정치를 배웠다고 하겠습니까?"
 공자가 화를 내며 曰 "내가 이래서 저 입놀림만 번드레한 놈들을 미워한다니까!"
 武人 출신으로 용맹을 숭상하던 제자 자로는 책을 읽지 않고도 충분히 정치를 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공자는 책을 통해 합리적 통치방법을 배우고 익힌 다음에야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論語에서는 학습의 수준을 셋으로 나눠 소개하고 있다.
 子曰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며,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학습의 성취가 단지 알고/모르는 이분법이 아니라 좀더 깊은 차원에 있음을 알 수 있다. ☞ 즐기는 단계란 이미 습관화되어 있는 단계를 말한다. 따라서 매일 꾸준히 하는 사람을 단지 아는 사람이나 좋아하는 사람이 따라잡기는 불가능하다. 어떤 일이든 즐기는 사람, 그 일에 습관화된 사람만큼 무서운 사람은 없다.
 먼 곳에서 찾아오는 벗이란 결코 대충 알고 지내는 주변의 오래된 말동무를 뜻하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이 배우고 익힘이라는 대목에 바로 뒤이어 나오는 구절임에 유의해야 한다.
 여기서 벗이란 배움과 익힘을 함께 하는 사람이다. 즉 나와 삶의 가치를 함께 하는 벗을 말한다. 同志요 동반자다.
 예컨대 재즈음악에 평생을 건 음악가가 있다. 중학생 때 우연히 재즈를 들은 뒤 푹 빠져 이 길로 나선다.
 돈벌이도 밥벌이도 오로지 재즈를 통해 할 뿐이다. 카페를 전전하며 힘겹게 살지만 새로운 악상과 표현법을 개발하는 데 혼신의 힘을 쏟는다.
 어느 날 재즈 카페에서 한 청중이 그의 음악성을 알아차리고 음반 취입을 권한다. 돈 되는 장르가 아니라서 자비로 1천 장을 제작한다.
 얼마 후 평소처럼 카페에서 연주를 마쳤는데 낯모르는 사람이 악수를 청하면서 술 한잔 나누며 예기하자고 한다.
 그는 미국에서 음반을 우연히 듣고 심취해 멀리까지 찾아온 것이다. 툭툭 던지듯 묻는 질문이 예리하고 날카로워 등에서 땀이 날 정도다.
 이런 사람이 바로 먼 곳에서 찾아온 벗이다. 그러므로 벗이라면 여태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사람이라도 좋다.
 단 한 번 만나도 속을 드러내 함께 흐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벗이다. 밤을 세고 며칠을 얘기하고 연주해도 즐거움이 그칠 줄 모를 것이다.
 끝내 헤어짐에는 伯牙絶絃, 즉 백아가 자신의 연주를 제대로 이해하던 유일한 벗인 종자기가 죽자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고사가 합당하리라.
 주변을 둘러보며 참된 친구를 찾는답시고 건방을 떨고 있지는 않은가?
 당신이 확고하게 자신의 길을 발견하고 그 길을 걸을 때에야 참된 친구, 진정한 벗이 생겨는 법이다. 이것이 공자의 가르침이다.
 참된 인생의 목표는 나의 길의 완성에 있다. 물질적 곤궁과 상관없이 자신의 길을 확고하게 내딛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 그 길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길이 아니라, 내가 걷지 않을 수 없는 길이 된다.
 그럴진대 남이 알아주든 않든 성낼 까닭이 없다. 그제야 군자라는 이름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배움과 익힘에 기뻐 열에 들뜨는 10~20대, 나의 길을 알아주는 사람들과 사귀며 함께 가는 40~50대, 끝내 나의 길의 주인이 되어 소명을 묵묵히 실천하는 60~70대가 인생이 아닌가?
 "有子曰, "군자는 근본에 힘쓰고, 근본이 확립되면 도가 발생한다. 효와 제라는 것은 인을 행하는 근본이 될 것이다."
 근본이 서야 道가 생겨난다.
 "子曰 巧言令色 鮮矣仁. 子曰 "말을 좋게 하고 얼굴 빛을 잘 꾸미는 사람 중에 仁한 자가 적은 법이라."
 "증자曰 "나는 말마다 하루에 세 번 성찰한다. 남을 위해 일을 도모함에 이를 성실히 하지 않았는가? 친구와 더불어 사귐에 믿음 있게 하지 않았는가? 가르침 받은 것을 제대로 복습해 익히지 않았는가?"
 "子曰 "군자는 언행이 무겁지 않으면 위엄이 없으며, 끊임없이 학문을 배우면 고루하지 않게 된다. 성실과 신의를 주로 하며, 자기만 못한 친구와는 사귀지 말고, 잘못이 있으면 바로 이를 고칠 줄 알아야 한다."